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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때 밀가루와 계란 던지는 이유??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2. 7. 00:23
졸업식 밀가루 던지는 이유

옛날 중·고등학교 졸업식 때에는 어김없이 밀가루가 등장했지만, 어쩐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들의 졸업식에는 아무런 이벤트도 없었습니다. 일제 시대에 만든 교복을 여전히 입던 시절, 몇몇 졸업생들은 어김없이 밀가루 파티를 열었습니다.
 
밀가루를 먹는 것이 아니라, 밀가루를 검은 교복에 뒤집어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교복 화형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교복이 없어졌기 때문에 내 졸업식 때에는 교복 화형식을 구경할 수 없었지만, 선배들의 졸업식에서는 그 같은 진풍경을 여러 번 구경했습니다.
 
교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너는 학생이다라는 낙인(烙印)과도 같아서 학생들에게는 폭압의 상징이었습니다. 교복에 학교 배지나 학년 배지를 달지 않으면 정문 앞에 서서 손들고 서 있어야 했고, 모자를 쓰지 않거나, 목 부분의 호크를 채우지 않아도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교복 때문에 시내에 나가면 선생님들에게 눈에 단박에 띄었습니다. 학생들은 교복만 없어도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을 텐데, 교복을 입고 참으로 답답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졸업생들은 교복이라는 억압적인 코드에 대해 밀가루를 뒤집어씀으로써 일축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밀가루였을까? 교복이 검은색이었기 때문입니다. 규범적인 검은색의 효능을 가장 효과적으로 백지화할 수 있는 재료가 허연 밀가루였습니다. 결국 밀가루 뒤집어쓰기는 이제 내가 학생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성인으로서 어엿하게 살아가겠다는 반항적인 독립선언이었던 셈입니다.
 

당시 밀가루 뒤집어쓰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어른이 많았지만,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조선 시대의 관혼상제(冠婚喪祭) 의식 중 관례(冠禮)와 비슷합니다. 관례란 어린이가 어른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의식이며, 남자만 행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경우 오직 혼인을 통해서만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 초기에 남자는 15세에서 20세 사이에 땋아 내렸던 머리를 올리고, 머리에 복건(僕巾초립(草笠사모(紗帽탕건(宕巾) 등의 관()을 씌우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이 의식에는, 관을 씀으로써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 된 이는 예의를 잘 지키고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주도 아래 엄숙하게 치러졌던 관례 의식이 아이들 스스로가 난장판을 벌이면서 행하는, 교복에 밀가루 뒤집어쓰기로 변형되었다는 것은 참으 로 재미있는 일입니다.
 

요즘에는 밀가루 뒤집어쓰기 풍조가 거의 사라졌지만, 졸업식은 여전히 관례로서의 구실을 합니다. 특히 졸업생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사회에 진출해야 할 경우, 그의 졸업식은 정말 중요한 관례 의식입니다.


어제 뉴스보니.. 이런 일도..-_-;

"평생 한번이라…" 졸업식마친 10대들 알몸 거리활보

중학생들이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성동경찰서 용답지구대에 따르면 5일 낮 1시쯤 동대문구 모 중학교 3학년생 A(15)군 등 5명이 나체인 상태로 성동구 용답동 마장교 근처를 달리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A군 등은 신답동 방면으로 수백m 도주했지만, 결국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 급히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경찰에서 "평생 한번있는 졸업식 뒷풀이에서 특별한 것을 해보고 싶어 해본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치자 학생들을 검거했지만, 별다른 범죄 의도가 없어 훈방조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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