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노래, 가사, 악보 보기 : 어린이날 노래, 가사, 악보 보기
민족 의식·조국 독립 염원 담아 출발… 40여 소년 단체 모여 1923년 첫 기념식
사회적 약자이기에 더욱 존중돼야…나뿐 아니라 남 배려하는 것도 중요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의 생일과도 같은 어린이날이 올해로 제85회를 맞는다.
일제 치하의 핍박과 설움 속에서 독립을 향한 겨레의 희망을 담아 시작된 어린이날의 함성은 '어린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큰 메아리로 변함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여든 해를 넘게 이어 온 어린이날에는 이처럼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는 정신과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다. 어린이날의 유래와 아동의 권리, 어린이와 관련한 최초의 것을 살펴봄으로써 소중한 어린이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 어린이날의 유래
1923년 5월 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경운동 서울 천도교본부 운동장에는 1000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모인 가운데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천도교소년회ㆍ조선소년군단ㆍ불교소년연맹 등 40여 소년 단체가 연합해 마련한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이었다.
당시 인구 30만 명의 서울 거리 곳곳에는 '어린이들을 내려다보시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십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되 늘 보드랍게 해 주십시오'라고 적힌 선전물이 무려 12만 장이나 뿌려졌고, 참가자들은 '경축 어린이날'이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앞세우고 고적대 행진곡에 맞춰 파고다 공원에서 광화문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우리의 첫 번째 어린이날 기념식이 이처럼 성대하게 펼쳐질 수 있었던 데에는, 소파 방정환 선생을 비롯해 여러 선각자들의 노력이 큰 힘이 됐다.
방정환 선생 등은 어린이를 정성껏 보살피고 소중히 키운다면 이들이 자라나 반드시 조국의 광복을 이끌어 낼 것이라는 믿었다. 이 때문에 조국 독립의 염원을 담아 목숨을 바쳐 어린이 문화 운동에 헌신했고, 어린이날이 제정되도록 소년 단체들의 뜻을 하나로 모았던 것이다.
어린이날이 제정되기 2 년 전인 1921년 소파 방정환 선생과 김기전ㆍ박래홍 선생 등은 힘을 합쳐 천도교소년회를 만든다. 이어 전국적으로 어린이에게 존대말 쓰기 운동을 펼치는 한편 어린이를 '아이'라고 얕잡아 부르던 것을 높임의 뜻을 담아 '어린이'로 부를 것을 주장했다.
이 때부터 어린이 문화 운동은 동화ㆍ동시ㆍ동요 등으로 불붙듯 번져 갔고, 1923년 3월 16일에는 최초의 소년 잡지 '어린이'가 탄생한다. 또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방정환 선생을 비롯해 진장섭ㆍ조재호ㆍ윤극영ㆍ손진태ㆍ마해송 선생 등이 중심이 되어 '색동회'를 탄생시키기로 뜻을 모으고, 고국에 있던 여러 소년 단체들과 힘을 모아 어린이날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여러 선각자들의 뜻이 하나로 모이고 뭉쳐져 탄생한 어린이날은 1927년 5월 첫째 일요일로 날짜가 바뀌고, 15 회가 되는 1937년에는 일제에 의해 기념식이 강제로 금지되는 아픔을 겪는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어린이날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알고 있었던 일제는 여러 소년 단체들도 강제로 해산시키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우리의 어린이 문화마저 짓밟으려 했다.
이후 중단된 어린이날 기념식은 해방이 된 이듬해인 1946년 5월 5일 건국준비위원회에 의해 제24회 기념식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고 해마다 쉼 없이 이어 오다, 1961년 아동복리법으로 5월 5일이 어린이날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소년한국일보와 어린이 단체들이 나서서 온 가족이 어린이와 지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건의를 계속했고, 이에 1975년에는 대통령령으로 공식 공휴일로 정해진다.
그 뒤 30 년 가까이 어린이날은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의 생일날처럼 소중히 지켜져 왔지만, 지난 2004년 국무회의에서 느닷없이 공휴일이 많다는 지적과 함께 어린이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이 일어 다시 한 번 위기를 맞는다.
이에 소년한국일보는 아동 단체들과 다시 힘을 모아 어린이날의 의미와 역사성을 알리며 반대의 여론을 모아갔고, 그 결과 정부는 2005년 어린이날의 역사성을 인정해 공휴일로 이어 갈 것을 확정했다.
◎ 아동의 권리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헌법에서 밝히고 있듯 인간은 남녀노소 모두가 똑같은 권리를 지니고 있다. 특히 어린이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 권리가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한다.
유엔은 이를 위해 1989년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을 만들어 18 세 이하의 세계 모든 아동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밝혀 놓았다. 우리 나라도 1991년 이 협약에 비준했다. 이로써 1957년 제정된 '대한 민국 어린이 보호 헌장'과 1961년 제정된 '아동복리법'(현재 아동복지법)과 함께 아동의 권리를 적극 보호하고 있다.
유엔 아동 권리 협약에 따르면, 아동의 권리는 크게 생존ㆍ보호ㆍ발달ㆍ참여의 네 가지로 구분된다.
생존의 권리는 아동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물과 음식은 물론 집과 의료 혜택을 국가와 사회가 제공해야 함을 뜻한다. 정부가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무료 급식을 실시하며, 소년 소녀 가장에게 싼 값에 아파트를 제공하고 의료 혜택을 주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생존의 권리를 지켜 주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보호의 권리는 모든 아동이 폭력과 학대는 물론 어떠한 착취나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말한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은 나뿐 아니라 상대방의 권리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교훈을 찾을 수 있다. 피부색이나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친구를 따돌리거나 남보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작은 행동이 아동에게 가장 소중한 권리를 짓밟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달의 권리는 아동이 자라나 평균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발달의 권리에는 여가 생활과 문화 생활을 즐기고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정보를 얻으며,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포함된다. 초ㆍ중등 의무 교육이 아동의 발달을 뒷받침하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참여의 권리는 아동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학급에서 열리는 어린이 회의도 작은 의미에서 아동의 참여 권리가 보호되는 좋은 본보기다.
아동의 모든 권리가 존중되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어린이 또한 자신의 권리를 배우고 잘 이해해야 한다. 오늘의 어린이들이 자라나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아동의 권리를 지금보다 더 잘 존중하는 사회와 나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아동단체협의회의 박용선 부장은 "어린이 모두가 나만을 위한 특권으로서가 아니라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차원에서 공부를 하고 실천해 나갈 때 우리 나라도 아동 권리를 제대로 존중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족 의식·조국 독립 염원 담아 출발… 40여 소년 단체 모여 1923년 첫 기념식
사회적 약자이기에 더욱 존중돼야…나뿐 아니라 남 배려하는 것도 중요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의 생일과도 같은 어린이날이 올해로 제85회를 맞는다.
일제 치하의 핍박과 설움 속에서 독립을 향한 겨레의 희망을 담아 시작된 어린이날의 함성은 '어린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큰 메아리로 변함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여든 해를 넘게 이어 온 어린이날에는 이처럼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는 정신과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다. 어린이날의 유래와 아동의 권리, 어린이와 관련한 최초의 것을 살펴봄으로써 소중한 어린이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 어린이날의 유래
1923년 5월 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경운동 서울 천도교본부 운동장에는 1000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모인 가운데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천도교소년회ㆍ조선소년군단ㆍ불교소년연맹 등 40여 소년 단체가 연합해 마련한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이었다.
당시 인구 30만 명의 서울 거리 곳곳에는 '어린이들을 내려다보시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십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되 늘 보드랍게 해 주십시오'라고 적힌 선전물이 무려 12만 장이나 뿌려졌고, 참가자들은 '경축 어린이날'이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앞세우고 고적대 행진곡에 맞춰 파고다 공원에서 광화문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우리의 첫 번째 어린이날 기념식이 이처럼 성대하게 펼쳐질 수 있었던 데에는, 소파 방정환 선생을 비롯해 여러 선각자들의 노력이 큰 힘이 됐다.
방정환 선생 등은 어린이를 정성껏 보살피고 소중히 키운다면 이들이 자라나 반드시 조국의 광복을 이끌어 낼 것이라는 믿었다. 이 때문에 조국 독립의 염원을 담아 목숨을 바쳐 어린이 문화 운동에 헌신했고, 어린이날이 제정되도록 소년 단체들의 뜻을 하나로 모았던 것이다.
어린이날이 제정되기 2 년 전인 1921년 소파 방정환 선생과 김기전ㆍ박래홍 선생 등은 힘을 합쳐 천도교소년회를 만든다. 이어 전국적으로 어린이에게 존대말 쓰기 운동을 펼치는 한편 어린이를 '아이'라고 얕잡아 부르던 것을 높임의 뜻을 담아 '어린이'로 부를 것을 주장했다.
이 때부터 어린이 문화 운동은 동화ㆍ동시ㆍ동요 등으로 불붙듯 번져 갔고, 1923년 3월 16일에는 최초의 소년 잡지 '어린이'가 탄생한다. 또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방정환 선생을 비롯해 진장섭ㆍ조재호ㆍ윤극영ㆍ손진태ㆍ마해송 선생 등이 중심이 되어 '색동회'를 탄생시키기로 뜻을 모으고, 고국에 있던 여러 소년 단체들과 힘을 모아 어린이날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여러 선각자들의 뜻이 하나로 모이고 뭉쳐져 탄생한 어린이날은 1927년 5월 첫째 일요일로 날짜가 바뀌고, 15 회가 되는 1937년에는 일제에 의해 기념식이 강제로 금지되는 아픔을 겪는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어린이날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알고 있었던 일제는 여러 소년 단체들도 강제로 해산시키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우리의 어린이 문화마저 짓밟으려 했다.
이후 중단된 어린이날 기념식은 해방이 된 이듬해인 1946년 5월 5일 건국준비위원회에 의해 제24회 기념식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고 해마다 쉼 없이 이어 오다, 1961년 아동복리법으로 5월 5일이 어린이날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소년한국일보와 어린이 단체들이 나서서 온 가족이 어린이와 지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건의를 계속했고, 이에 1975년에는 대통령령으로 공식 공휴일로 정해진다.
그 뒤 30 년 가까이 어린이날은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의 생일날처럼 소중히 지켜져 왔지만, 지난 2004년 국무회의에서 느닷없이 공휴일이 많다는 지적과 함께 어린이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이 일어 다시 한 번 위기를 맞는다.
이에 소년한국일보는 아동 단체들과 다시 힘을 모아 어린이날의 의미와 역사성을 알리며 반대의 여론을 모아갔고, 그 결과 정부는 2005년 어린이날의 역사성을 인정해 공휴일로 이어 갈 것을 확정했다.
◎ 아동의 권리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헌법에서 밝히고 있듯 인간은 남녀노소 모두가 똑같은 권리를 지니고 있다. 특히 어린이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 권리가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한다.
유엔은 이를 위해 1989년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을 만들어 18 세 이하의 세계 모든 아동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밝혀 놓았다. 우리 나라도 1991년 이 협약에 비준했다. 이로써 1957년 제정된 '대한 민국 어린이 보호 헌장'과 1961년 제정된 '아동복리법'(현재 아동복지법)과 함께 아동의 권리를 적극 보호하고 있다.
유엔 아동 권리 협약에 따르면, 아동의 권리는 크게 생존ㆍ보호ㆍ발달ㆍ참여의 네 가지로 구분된다.
생존의 권리는 아동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물과 음식은 물론 집과 의료 혜택을 국가와 사회가 제공해야 함을 뜻한다. 정부가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무료 급식을 실시하며, 소년 소녀 가장에게 싼 값에 아파트를 제공하고 의료 혜택을 주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생존의 권리를 지켜 주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보호의 권리는 모든 아동이 폭력과 학대는 물론 어떠한 착취나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말한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은 나뿐 아니라 상대방의 권리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교훈을 찾을 수 있다. 피부색이나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친구를 따돌리거나 남보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작은 행동이 아동에게 가장 소중한 권리를 짓밟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달의 권리는 아동이 자라나 평균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발달의 권리에는 여가 생활과 문화 생활을 즐기고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정보를 얻으며,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포함된다. 초ㆍ중등 의무 교육이 아동의 발달을 뒷받침하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참여의 권리는 아동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학급에서 열리는 어린이 회의도 작은 의미에서 아동의 참여 권리가 보호되는 좋은 본보기다.
아동의 모든 권리가 존중되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어린이 또한 자신의 권리를 배우고 잘 이해해야 한다. 오늘의 어린이들이 자라나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아동의 권리를 지금보다 더 잘 존중하는 사회와 나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아동단체협의회의 박용선 부장은 "어린이 모두가 나만을 위한 특권으로서가 아니라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차원에서 공부를 하고 실천해 나갈 때 우리 나라도 아동 권리를 제대로 존중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방정환 선생이 처음 '어린이'란 말 사용 어린이라는 말만 들어도 떠오르는 분이 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다. 어린이라는 말은 언제 생겼고, 어린이 관련 문화 단체는 언제부터 활동을 시작했을까? 국내의 어린이 관련 최초의 것들을 살펴본다. △ 최초의 초등학교 : 교동초등학교. 1894년 9월 18일 갑오개혁 때 서양식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고종의 명으로 개교했다. 궁 근처의 왕족과 관리의 자제에게 신식 교육을 시키기 위해 설립돼 '황실학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어린이란 말을 사용한 사람 : 방정환 선생. 1920년 8월 25일 '개벽'지 제3호에 '불켜는 아이'라는 번역시에서 처음 씀. △ 최초의 어린이 잡지: '어린이'. 국내 첫 순수 아동 잡지. 천도교소년회가 1923년 3월 20일 발간. △ 첫 어린이 문화 단체: 색동회. 1923년 5월 1일 횃불을 올렸다. 일본 도쿄에서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손진태ㆍ윤극영ㆍ정순철ㆍ고한승ㆍ진장섭ㆍ조재호ㆍ전병기 등 8 명이 함께 만듦. △ 최초의 동화 구연가 : 방정환.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제정했으며, 잡지 어린이를 창간함. △ 첫 어린이날 : 1923년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 기념 축하식은 천도교 본부 운동장에서 열림. △ 최초의 창작 동화 : '바위 나리와 아기별' 마해송 선생이 '샛별'이라는 잡지에 1923년 발표했다. △ 최초의 창작 동요 : '반달'. 윤극영 선생이 작사ㆍ작곡했다. 1924년 발표. △ 첫 동시집 : '잃어버린 댕기'. 윤석중 선생이 펴냈다. 1933년 나옴. △ 최초의 어린이 헌장비 : 1958년 대구 달성공원에 세워짐. △ 어린이 일간 신문 : 소년한국일보. 1960년 7월 7일 창간. △ 최초의 아동극단 : '새들'. 1962년 창단함. △ 공공 어린이도서관 : 사직동 어린이도서관. 유네스코 제정 세계 어린이해를 기념해 1979년 5월 4일 세워짐. △ 만화 영화 : '로보트 태권 V'. 1976년 7월 24일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개봉. △ 어린이 전용 박물관 : 삼성어린이박물관. 1995년 5월 5일 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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