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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각 지방의 명칭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2. 6. 09:42

우리나라 각 지방의 명칭

 

지방화 시대에 알아두어야 할 각 지방의 명칭

 

경향(京鄕)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서울과 지방을 뜻하는데, 결과적으로 한 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 된다.  여기서  ‘경(京)’이란 일국의 수도, 서울을 말하기도 하고, 우리가 셀 수 있는 숫자의 끝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향(鄕)’이란 본래 시골을 나타내면서 성(城)이나 진(鎭) 이외의 땅을 말하지만, 중국에서는 향이 지방의 작은 행정구역으로 사용되어 오면서 그 범위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였다. 어쨌든 우리의 봉건왕조시대에는 ‘향’이 서울을 제외한 지방을 뜻하였으며, 또 고향이라는 뜻으로 향토나 향수와 같은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근래에 젊은 사학자들 사이에 「향토사(鄕土史)」라는 말 대신 「지역사(地域史)」 또는 지방사(地方史)」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향’이라는 용어가 시골스러움, 저개발과 낙후성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므로 지역균형발전의 차원에서 향토사 → 지역사가 더 지방화시대에 부합된다고 믿는 것 같다.

그 점에 대하여 필자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있기는 하지만, 향을 지역이라는 말로 바꾸는 것이 우리의 옛 것, 고향다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단순히 개발과 변화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아서 한 가닥 아픔이 남는다.

오늘날 세상은 빠르게 「지방화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방으로 대폭 이양되고, 지방자치와 지방분권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방균형발전의 욕구도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우리 나라의 지방 형성은 조선의 8도 체제에 의하여 지금의 지방제도가 그 골격을 이루게 된 것이다.  물론 신라의 9주 5소경이나 그 이전과 이후에도 나름대로의 지방제도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지방명칭은 이 때를 기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원래 지방이란 어떤 곳에 한 가옥이 들어서고, 그 주위에 취락이 형성되어 마을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마을이 모여 고을을 이루며, 고을이 모여 지방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만찬가지로 향토사가 모여 지방사가 되고, 지방사의 총화가 곧 한 나라의 역사가 된다. 이런 확산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방 명칭을 바로 아는 것 자체가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지방명칭의 유래와 사용시기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8도의 지방명칭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만들어진 이름들이다.  그러나 그 지역의 범위까지 확정된 것은 조선 태종 - 세종 때 서북방면과 동북방면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압록강 - 두만강 일대를 우리 강토로 회복한 이후부터이며 그 시기는 대략 1500년대 초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00道」라고 할 때의 ‘도(道)’는 “00방면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으로서 원래는 조선시대 역을 관장하는 찰방의 관직 앞에 붙어있었던 명칭과 비슷한데, 조선시대의 광역지방명칭으로 이런 체제를 따르게 된 것 같다.

 

가. 경기도(京畿道) :  ‘경기’란 ‘서울을 둘러싼 그 문지방’이라는 뜻이다. 곧 도읍지의 주변지역을 말한다.  ‘경기’라는 이름은 1018년(고려 현종 9)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충청도의 북부 일부가 들락날락하였으나 대체로 경기좌도는 한강이남 지역, 경기우도는 한강 이북지역이 해당되었다.  (좌.우도는 서열상 좌도가 먼저이다.) 관찰사는 처음 수원에 주재하였다가 뒤에 광주(廣州)로 옮겼으며, 감영을 기영(畿營), 감사(관찰사)를 기백(畿伯)이라 부른 것도 모두 경기의 ‘기’를 붙인 것이다.

 

나. 강원도(江原道) : ‘강원’이란 이름은 강릉(江陵)과 원주(原州)의 머리 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강원지방은 삭방도, 춘주도, 동주도, 연해명주도, 교주도 등의 이름으로 불렀으며, 1395년(조선 태조 4) ‘강원’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되었다.  관찰사는 원주에 주재하였으므로 감영을 원영(原營), 감사를 동백(東伯)이라 불렀는데, ‘동’은 관동의 ‘동(東)’자를 붙인 것이다.

 

다. 충청도(忠淸道) : ‘충청’이라는 이름은 충주(忠州)와 청주(淸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충청’은 1106년(고려 예종 원년) ‘양광충청주도’라고 할 때 최초로 ‘충청’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대체로 충청좌도는 지금의 충청북도, 충청우도는 지금의 충청남도 지역에 해당된다. ( 좌.우도는 모두 서울의 궁궐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의 방향임) 관찰사의 영은 공주에 두었으므로 감영을 금영(錦營), 감사를 금백(錦伯)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모두 금강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라. 전라도(全羅道) : ‘전라’란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합성지명이다. 1018년(고려 현종 9) 처음으로 ‘전라도’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그전에는 강남도, 해양도, 전광도라고도 불렀다. 1407년(조선 태종 7)군사 행정상 편의에 의하여 좌, 우도로 나누었는데, 동쪽 산악지대를 좌도, 서쪽 평야지대를 우도라 하였다.  관찰사는 전주에 두었으므로 감영을 완영(完營), 감사를 완백(完伯)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완’은 옛 이름 완산주의 머리글자를 취한 것이다.

 

마. 경상도(慶尙道) : ‘경상’이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1106년(고려 예종 원년) 경상진주도라고 할 때 처음 ‘경상’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동남도, 영남도, 산남도, 경상진주도 등으로 불렀으며, 1314년(충숙왕 원년) 경상도로 되었고, 1407년(조선 태종 7) 좌, 우도로 나누었는데, 낙동강 동쪽을 좌도, 서쪽을 우도라 하였다.  관찰사는 대구에 주재하였으며, 그 감영을 영영(嶺營), 감사를 영백(嶺伯)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영’은 지금 영남의 ‘영(嶺)’과 같이 고개를 뜻하는 이름이다.

 

바. 황해도(黃海道) : ‘황해’라는 이름은 황주(黃州)와 해주(海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본래 관내도, 서해도, 풍해도, 황연도라고도 하였으며, 1407년(태종 7) 황해도라 하였고,  그해에 좌,우도로 나누었다.  여기서 좌도는 동쪽, 우도는 서쪽 지방을 뜻하였다. 관찰사는 해주에 있었으므로 감영을 해영(海營), 감사를 해백(海伯)이라 불렀다.

 

사. 평안도(平安道) : ‘평안’은 평양(平壤)과 안주(安州)의 머리 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본래 패서도, 북계, 서북면, 관서라고도 불렀으며, 1413년(태종 14) 평안도로 고친 것이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 동도와 서도를 나누기도 하였으며, 관찰사는 평양에 있었으므로 감영을 패영(浿營) 또는 유영(柳營) 혹은 기영(箕營)이라 하였고, 감사를 기백(箕伯)이라 불렀다.  여기서 패영의 ‘패(浿)’는 패수, 즉 대동강을 말하며, 유영의 ‘유(柳)’는 옛 평양의 이름이 유경(柳京)이었기 때문이다. 또 기영의 ‘기(箕)’는 이곳이 기자의 옛 터전이기 때문이다.  

 

아. 함경도(咸鏡道) : ‘함경’이란 이름은 함흥(咸興)과 경성(鏡城)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그전에는 함길도, 삭방도, 동계, 동북면, 영길도 등으로 불렀다.  1509년(중종 4) 함흥부의 감영을 회복할 때 함경도로 고쳤다.  관찰사가 함흥에 주둔하였으므로 감영을 함영(咸營), 감사를 북백(北伯)이라 불렀다. 북백의 ‘북’은 관북의 북을 취한 것이다.

 

○ 지방 명칭의 별칭(또 다른 이름들)

 

가. 영남(嶺南) : 경상도의 별칭으로 교남(嶠南)이라고도 불렀다.  영남의 ‘영’은 고개를 뜻하며 조령(鳥嶺), 죽령(竹嶺), 추풍령(秋風嶺) 등의 고개가 그 경계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고개 중에서도 대표적인 고개가 조령(제 1관문 - 제 3관문이 있음)이 되므로 조령이남을 영남이라 한다.  교남은 영남과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나. 호남(湖南) : 전라도의 별칭으로 금강하류 남쪽을 뜻한다.  대개 호남의 ‘호(湖)’자를 호수를 뜻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김제 벽골제 이남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금강의 옛 이름이 호강(湖江)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호’는 조선시대에 강변이나 바닷가에도 흔하게 붙여져 있었으며, 서울의 동호(東湖,지금 동호대교 부근의 한강), 마호(麻湖, 지금 마포 앞 한강)와 같은 이름들이 많다.  또 고려 때에도 호남을 강남도(江南道)라 불렀는데, 이것도 역시 금강의 남쪽을 뜻한다.

 

다. 호서(湖西) : 충청도의 별칭으로 호중(湖中)이라고도 한다. 이 지역도 ‘호(湖)’를 제천의 의림지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금강 상류의 강변에는 호서루(湖西樓)니, 금호루(錦湖樓)니 하는 누정들이 있고, 금강의 옛 이름이 호강으로서 이 강이 충청지방을 휘돌아 흐르기 때문이다.

 

라. 기전(畿甸) : 경기도의 별칭이며, 기중(畿中), 또는 적기(赤畿)라고도 한다. ‘기(畿)’는 원래 중국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5백 리 이내의 땅을 말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서울을 둘러싼 땅, 그 주변지역을 말한다.  곧 ‘기’가 문지방, 뜰, 또는 안마당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 관동(關東)과 관서(關西), 영동(嶺東)과 영서(嶺西) : 강원도의 별칭이며, 관동, 관서의 ‘관(關)’은 대관령이 아닌 철령관(鐵嶺關)의 동쪽과 서쪽을 말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 등) 한편 영동과 영서는 대관령 서쪽을 뜻하는 이름이므로 이들이 근래에 서로 혼용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관동은 무방하되, 관서는 평안도를 말하므로 대관령 서쪽의 강원도 지방은 ‘영서’라는 이름으로 고쳐 써야 할 것이다.

 

바. 해서(海西) : 황해도의 별칭이며, 해서의 ‘해(海)’가 해주라는 설,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라는 설이 있다.  당시의 정황이나 벽란도진의 성세를 감안할  때  예성강 하구설이 더 무게를 갖는다.

 

사. 관서(關西) : 평안도 지방의 별칭으로서 철령관의 서쪽을 뜻하는 이름이다.  강원도 지방의 관동, 관서와 혼동하기 쉬우나 관서 = 평안도는 문헌상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이름이다.

 

아. 관북(關北) : 함경도의 별칭으로서 철령관의 북쪽지방이라는 뜻이다.  우리 나라 최고의 산악지대를 이루는 북쪽지방으로서 철령위 문제, 여진족 침입 문제 등 영토분쟁으로 늘 말썽이 된 곳이다.  그러기에 철령을 중심으로 관서, 관북, 관동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다.

 

○ 그 외에 사용된 광역지명(廣域地名) 등

앞에서 소개한 우리 나라 8도의 명칭과 별칭 이외에도 왕실이나 조정에서 사용된 지역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을 뽑아서 여기에 풀어보았다.

 

가. 상사도(上四道) :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위(북)에 있는 4개 지방을 말한다.  곧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이다.

 

나. 하삼도(下三道) 또는 삼남(三南)지방 : 서울에서 남쪽에 있는 3개 지방을 말한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이다. 이들은 모두 궁성의 남쪽에 위치하므로 하삼남 또는 삼남지방이라고도 하였다.

 

다. 기호(畿湖)지방 : 경기도지방과 호서(충청도)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라. 영호남(嶺湖南)지방 : 경상도(영남)지방과 전라도(호남)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마. 양호(兩湖)지방 : 충청도(호서)지방과 전라도(호남)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바. 양남(兩南)지방 : 경상도(영남)지방과 전라도(호남)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사. 양북(兩北)지방 : 강원도지방과 함경도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아. 양서(兩西)지방 : 황해도(해서)지방과 평안도(관서)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 기타 청남(淸南) 청북(淸北)지방 : 평안도를 나누어 청천강 이남을 청남, 청천강 이북을 청북지방이라 하였다.

위의 팔도 지방 명칭 중에서 합성지명(合成地名)을 만들기 위하여 대표적인 고을을 선택하는 방법은, 대개 계수관(界首官)이라 하여 그 도의 경계지역 내에서 가장 품계가 높은 관리가 주둔하는 고을의 명칭을 택하여 그 명칭을 붙였다.

이 경우에 두 고을 중에서 어느 고을 이름을 먼저 붙이느냐(앞 자리에)하는 문제는 시대에 따라 바뀌기도 하였지만 대개 두 고을 중 큰 고을 이름을 앞에 붙이거나 역사가 오래 된 고을이름을 앞에 붙이는 것이 관례가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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