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거된 몬토야… 지난 10일 콜롬비아군에 붙잡혀 연행되는 디에고 몬토야(가운데). 몬토야는 세계 마약 밀매업계의 거물로, FBI 10대 현상범중 한 명이었다. /AP |
10명 중 6명은 살인자… 평균 37세 최근 마약조직 두목 잡혀 9명 남아
지난 11일(한국시각) 콜롬비아 최대 마약밀매 조직 ‘노르테 델 바예 카르텔’의 두목 디에고 몬토야가 잡혔다. 그는 미 연방수사국(FBI)이 지목한 10대 현상수배자 중 하나. 몬토야는 1990년 이후 미국에 100억달러(9조4000억원)어치 마약을 공급하고,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본지 9월12일자 보도
2004년 5월 FBI는 몬토야를 ‘10대 현상수배자(Ten Most Wanted Fugitives)’ 중 하나로 찍고 현상금 500만달러를 걸었다. 오사마 빈 라덴에 걸린 2700만달러에 비하면 푼돈이지만 나머지 ‘10대(Top Ten)’ 수배자들에겐 기껏 10만달러만 책정했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액수였다. 돈의 위력 탓인지 몬토야의 은신처에 대한 제보가 이어졌고, 결국 3년 4개월만에 그의 팔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FBI가 1950년 도입한 ‘10대 현상수배자’는 꽤 성공한 기획이다. 지금까지 ‘10대 현상수배자’에 이름을 올렸던 범죄자 488명 중 150명이 여기저기 뿌려진 전단이나 보도를 보고 신고한 시민들 덕분에 검거됐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기획은 갈수록 감시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범죄자들을 쫓는 데 힘에 부친 FBI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입했다.
1949년 당시 에드거 후버 국장은 통신사 UPI의 전신인 INS(International News Agency) 편집국장 윌리엄 허친슨과 범인 검거의 어려움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죄질이 나쁘고 꼭 잡아야만 하는 10명을 따로 뽑아 명단을 만들어 널리 알리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후버는 각 지부에 후보 명단을 제출하라고 한 뒤 최종 10명을 확정했다. 이듬해 언론은 물론, 우체국 같은 공공장소에 이들의 사진과 이름, 혐의 등이 담긴 전단을 대량 배포했다. ‘10대 현상 수배자’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붙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범인 제임스 얼 레이, 유명 디자이너 베르사체를 살해한 앤드루 쿠나낸, 워싱턴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정신병자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 등이 10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최근 명단에는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테러범도 들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살인이 강력범죄의 대명사이다 보니 여전히 살인 용의자들이 많다.
이혼을 요구한 아내와 두 자녀들을 모두 살해한 로버트 피셔, 여자 친구과 그녀의 두 자녀를 살해한 뒤 타고 있던 차를 태워 증거를 없애려 한 혐의를 받고 있는 호르헤 로페스 오로스코 등 10명 중 6명이 살인자다.
23년째 잡히지 않는 은행 강도도 있다. 성실한 웰스파고 은행 현금수송차 경비였던 빅토르 헤레나는 1983년 9월12일 강도로 돌변, 차 안에 있던 현금 700만달러를 갖고 달아났다. 그는 전과도 없었다. 고교 시절 유망한 미식축구 선수였고, 대학까지 나온 그가 이런 중범죄를 저지르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는 게 동료들의 증언이었다. 그를 추적하는데 실패한 FBI는 1984년 5월 헤레나를 명단에 올렸다. FBI는 그가 푸에르토리코의 비밀 독립운동단체인 ‘로스 마체테로스(사탕수수를 베는 노동자라는 뜻)’ 조직원이었고, 조직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을 떠올리게 하는 탈옥수도 있다. 22살이던 1980년에 살인을 저질러 25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글렌 갓윈은 1987년 악명 높던 캘리포니아 폴섬 교도소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맨홀을 부수고 하수구를 300m나 기어가 미리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고무 뗏목을 타고 강을 따라 유유히 사라졌다. 갓윈은 멕시코로 피신한 뒤 그곳에서 마약밀매를 하다 1991년 다시 붙잡혔다. 미국으로 이송될 위기에 처했던 그는 친분이 있는 마약상의 도움으로 두 번째 탈옥에 성공, 다시 종적을 감췄다.
보스턴 남부에서 아일랜드계 마피아 보스로 위세를 떨친 제임스 불저(78)도 특이한 인물이다. 크고 작은 19건의 살인에 연루되어 현상수배된 그는 FBI 감시망을 피해 꼭꼭 숨어있다. 영국, 우루과이, 이탈리아 등지에서 그를 봤다는 제보가 줄을 잇고 있지만, 아직 오리무중이다. FBI는 동생인 전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이자 매사추세츠대 학장을 지낸 빌리 불저가 제임스를 돕는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물증이 없어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FBI는 10명의 수배자에 대해 순위는 매기지 않는다. 혹시 순위를 매기면 범죄자들 사이에 1위에 오르려는 왜곡된 경쟁 심리가 발동,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시대별로도 10대 현상수배자들 면면에는 차이가 있다. 1950년대는 유괴, 배임, 차량 절도 등이 많았으나, 1960년대로 접어들면 유난히 과격 시위 주동자들이 늘어났다. 1970년대는 마피아, 1980년대는 마약상, 1990년대 후반부터는 테러범들이 명단에서 자주 눈에 띄었다.
그동안 10대 명단에 오른 수배자들의 신상을 종합하면 평균적으로 37세에 키 178㎝ 몸무게 76㎏의 남자로, 범죄 현장에서 1545㎞ 떨어진 곳에서 잡히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자는 지금까지 8명 밖에 없었다.
1969년 빌리 브라이언트처럼 명단에 오른 지 2시간 만에 잡힌 수배자도 있고, 25년 10개월 27일간 10대 현상수배자에 있다가 빠진 도널드 웹 같은 용의자도 있다. 지금까지 10대 목록에 오른 수배자 중 94%가 검거됐는데 명단에 오른 뒤 평균 145일이면 꼬리가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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