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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 명성황후 생가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9. 6. 02:05

2007 12 14, 서울 남산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골짜기를 타고 산을 넘던 바람은 내리는 눈을 이리저리 흔들고, 애써 대지에 내린 눈은 바람의 등살에 쌓이지 못하고 있었다. 산 아래 시가지의 휘황찬란함은 밤 같지 않은 밤으로 내리는 눈을 맞고, 도시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경쟁은 겨울 같지 않은 겨울로 내린 눈을 녹이고 있었다.

 

그 시간, 그저 그런 산에 남산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경복궁에도 눈이 내렸다. 퇴락한 왕가의 궁궐에 몇 개 남지 않은 건물은 제 있는 힘을 다해 처마를 뻗어 보지만 결국 100분의 1도 채 받아 내지 못했다. 나머지 대부분의 눈은 궁궐의 황량한 마당에서 제멋대로 쌓이고, 제멋대로 얼고, 제 멋대로 녹다 결국 제멋대로 사라질 터였다.

 

명성황후는 자신을 기억하라 한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실은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에 역사적 의미가 덧씌워져, 당사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이야기는 역사보다 더한 상징이 되어 버렸다.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 역사는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다 망했고, 그 허약한 대한제국에 비수를 꽂은 일본과 그 일본이 시해한 명성황후는 100년이 흐르는 동안 역사적 사실과 의미들을 모두 삭인 후 명성황후가 대한제국이라는 등식의 고갱이만 남겼다.

 

몇 년 전 여주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에 간 적이 있다. 깨끗한 한옥과 비석들, 알찬 명성황후기념관과 잘 가꿔진 연못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었지만 왠지 허망했다. 세월의 더께가 덜 입혀진 데서 비롯된 생경함이나 생가를 둘러싼 벌판의 황량함과는 다른 허망함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한국인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었던 애국심의 다른 발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과연 명성황후가 그렇게 죽지 않고, 과연 대한제국이 그렇게 망하지 않았던들 그렇게까지 허망했을까? 허망하게 죽고 허망하게 망했기에 화려하게 꾸밀수록 더 허망하고, 의미를 부여할수록 더 허망하고, 기념할수록 더 허망한 건 어쩔 수 없다. 생가에 남아 있는 어린 명성황후의 흔적도 자신을 기억하라 하고, 최근에 복원된 건청궁에서도 시해 당한 명성황후의 혼이 되살아나 자신을 기억하라 하고, 그리고 나는 뮤지컬(Musical) 명성황후를 보았다.

 

공연으로만 치부하자면 신나는 틈을 주지 않는 지루한 공연이었다. 잠시 신나려고 하면 이내 관객을 그 시대로 끌고 갔다. 그 시대란 울분과 한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시대요, 즐거워도 가슴에서는 눈물이 나는 시대요,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드는 시대요, 격랑에 휩쓸린 조상을 애꿎게 증오하게 만드는 시대이기에 애초부터 공연에는 슬픔, 역설, 조소, 풍자는 있을지언정 기쁨, 자긍, 존경, 환희는 있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지워 버리고 싶은 아픈 역사를 답습해가는 것이기에 그 지루함은 배가됐다.

 

공연은 역사를 착실히 훑고 갔다. 흥선대원군이 민비를 궁으로 들이고, 고종과 민비가 서로 사랑을 하고, 세계열강이 우리나라에 손을 뻗기 시작하고, 줏대 없는 고종이 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마누라인 민비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순종이 태어나고, 고종과 흥선대원군, 민비의 갈등을 열강이 적절히 이용하다 뜻에 맞지 않아 버리는 내용이 공연에 적절히 안배되어 있었다. 흠이 있다면 궁의 보안을 맡은 장군과 민비 사이의 사랑을 그린 부분인데 아마 공연의 격이 너무 높아질 것을 우려해 격을 좀 떨어뜨릴 필요가 있었나 보다. 마지막 시해 당한 명성황후가 되살아나 절규하는 대단원은 지금껏 내가 본 공연 중에 최고였다. 관객의 감정을 한껏 끌어 올린 그 울림은 이게 내 감정의 최고점이다 싶을 때 그보다 훨씬 더 높이 있는 내 가슴 속 미지의 공간으로 나를 밀어 넣었고, 미지의 공간에 대한 자각으로 미쳐 버릴 것 같은 가슴이 더 이상의 감동은 안 된다며 손타래를 쳐보았지만 공연은 내 가슴의 거부에도 아랑곳없이 나를 치밀고 있었다. 결국 일개 한국인으로서, 청년으로서, 한 여자의 사랑을 받는 지아비로서, 그리고 관객으로서 그 자리에 있던 내가 피 끓는 애국골수분자로 다시 태어나고 나서야 죽은 명성황후는 나를 놓아주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1985 10 8일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이 두 눈으로 명성황후의 시해를 목격한 그 겨울 같지 않은 겨울날의 밤 같지 않은 밤에는 제대로 내리지도 쌓이지도 얼지도 녹지도 못할 눈이 쉼 없이 내리고 있었다. 명성황후의 혼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맺힌 식은 눈물과 같은 눈이 현재에 살고 있는 나와 서울을 깨우치려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아니 고난을 뚫고 흩날리고 있었다.

http://blog.naver.com/dondogi/100045342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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