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예민한 질문이네요.” 내년에 다시 빅리그에 도전할 것이냐고 김선우(30)에게 물었다. 대답은 예상과 달리 ‘그렇다’가 아니었다. 지난 97년 11월 미국에 건너간지 어느새 10년. 그러나 그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통산 118경기 출장에서 13승13패. 방어율 5.31.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의 트리플A 프레스노 그리즐리스에서 뛴 올시즌 단 한 번의 콜업도 없이 ‘마이너리그 투수’로 지내다 지난달 11일 귀국했다.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문을 연 그는 그러나 자신의 진로에 대한 속마음을 차분하게 털어놨다. “아직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좀 현실적으로 생각해야겠다”고. 지난 겨울 두산의 45억원 러브콜을 뿌리쳤을 때와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은 그는 오는 25일 훈련소에 들어간다. 4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치고 나면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밝힐 것이라고 했다.
◇개안(開眼)
시즌 내내 마이너리그에만 머문 것은 2001년 빅리그 데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어느 때보다 의미있는 한해였다고 자평했다. “이제까지는 패기를 앞세워 멋모르고 돌진만 했어요. 반복적으로 공만 던진 거죠. 그런데 올해 마이너리그에 있으면서 달라졌어요. 여물었다고 할까. 생각을 하면서 야구를 하게 됐어요. 문제는 야구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있던 곳이 메이저리그가 아니었다는 거죠. 이전에 많은 찬스들이 있었는데 왜 아무 생각 없이 야구를 했는지 스스로 한심하게 느꼈어요. 그렇지만 더 늦지 않은 것만도 다행 아닌가요? 평생 모르고 끝났을 수도 있으니까.” 지난 10년간 했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야구를 최소한 몇년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처음에는 페이스가 좋았고 체력에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결국 마이너리그행을 통보받았다. “캠프때 자이언츠가 얘기한 게 있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말을 바꿔서 실망했죠. 차라리 그런 얘기가 없었으면 괜찮았을텐데. 마음이 상해서 집으로 가버렸죠. 올해 태어난 둘째도 보고싶었고. 팀이 정해지면 그때 해야겠다 마음 먹고 공을 놓았는데 다시 시작하려니까 스피드도 안나오고 이래서는 안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데요. 경기에 나가서 투구수를 늘리니까 어깨가 묵직하고 몸이 안풀렸어요. 그러다보니 방어율도 8점대. 9점대로 올라갔는데 페이스를 찾으면서 후반기는 괜찮았죠.” 샌프란시스코는 그를 마이너리그에 내려보냈다가 나중에 중간계투요원으로 쓰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싫다고 했다. 불펜 역할을 받아들였다면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고 그는 믿고 있다. 사실 올시즌 샌프란시스코에서 그가 선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기회는 올 것이고 선발이 아니면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객지(客地)
올시즌 프레스노에서 김선우의 동료투수였던 에릭 트리츠가 지난달 빅리그로 올라갔다. 트리츠는 경기가 끝난 뒤 샤워때 집어든 ‘메이저리그 타월’의 부드러운 감촉에서 자신이 꿈의 무대에 섰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보통은 일반 항공기의 좁은 좌석에서 고생하다가 전세기의 안락한 가죽 시트에 앉았을 때 ‘메이저’와 ‘마이너’의 차이를 느낀다. 김선우가 이미 오래 전 거친 과정이다. 그는 미국에 간 뒤 3년동안 힘겨운 마이너리그 생활을 했고. 몬트리올 시절인 2004년에는 풀타임 메이저리거도 경험했다. 이제는 그런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다. “미국에서 사는 게 별로 힘들지 않아요. 음식이나 다른 것은 별로 문제가 없는데 딱 하나 이동하는 게 너무 피곤해요. 공항 가는 버스 타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경기 끝나고 밤늦게 돌아오면 거의 잠을 못잘 때도 있거든요. 그러다보면 몸 밸런스가 깨지고. 그런 것만 아니면 마이너리그에서 야구하는 것도 괜찮아요.”
2003년 결혼한 뒤 3년간은 오프시즌에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 겨울이면 골프도 치고 낚시도 하면서 지냈다. 그와 김병현. 서재응 ‘삼총사’는 여전히 잘 어울린다. 그가 집을 산 플로리다 올랜도에도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국땅에서 살았지만 ‘사람이 그리워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고국과 같을 수는 없다. “어려서 미국에 갔을 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것은 아쉬워요. 뭘 해도 허전했고. 빨리 메이저 올라가야 되는데 하는 생각에 항상 불안했죠. 그때 가족이 함께 있었다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자식들에게는 자기 길이더라도 외롭게 혼자서 가야하도록 하고 싶지 않아요.”
성공을 위해서는 실력 뿐 아니라 운도 따라줘야 한다는 것은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 감독이나 동료. 에이전트를 잘만나야 한다는 것 같은. “그런 쪽으로 탓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기회가 많았는데 그걸 잡지 못했다면 실력 부족이고 노력 부족이죠. 물론 나 자신 말고도 여러 요인들이 있었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생각해봐야 괴롭기만 하고 다 지나간 일이니까.”
◇부정(父情)
그가 처음 메이저리거를 꿈꾼 것은 94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휘문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이후 단 한번도 빅리그에서 성공하겠다는 뜻을 굽힌 적이 없다. 그러나 그런 굳은 의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31개월과 5개월 된 두 아들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인생에서 오직 이 길 뿐이라고 생각하고 걸어왔어요. 도중에 고난을 겪으면서 편한 쪽으로 길을 바꾼다면 그때까지 가졌던 꿈이 허상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끝까지 가고 싶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자식이 생기면서 다른 생각이 들어요. 미래를 생각할 때 두려운 게 있어요. 20년. 30년이 지난 뒤에 돌이켜보면서 야구를 하면서 남긴 게 없다. 내 꿈을 못이뤘다고 실망하는 건 두렵지 않아요. 아이들이 커가는데 아빠로서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나중에 정말 가슴 아플 것 같아요. 야구인생에서의 패배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가족에서 실패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견딜 수 없어요.”
4년만에 귀국해 한달 가까이 가족과 지내면서 느낀 게 많다. 큰 아이를 유아원에 보냈는데 2주도 안돼 말도 늘고 예의범절도 익히는 등 잘 적응하는 것을 보고 흐뭇하면서 한편으로는 서글펐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아이가 말을 나눌 사람이 엄마 아빠 밖에 없어 말을 배우는 게 늦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보낸 프리스쿨에는 아이가 가기 싫어했다고 한다. “3년 동안 우리에 가둬놓고 키운 게 아닌가. 내 고집 내 욕심 때문에 또 그런 테두리 안에서 살게될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팠어요. 작년까지 내 고집대로 해왔는데 올해도 결과적으로 좋은 게 없으니까 아내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아요. 내 뜻만 고집하지 말고 안전한 길로 가면 아이들을 밝고 부족함 없이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는 야구 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도 눈을 떠가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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