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한정보

산나물 장아찌 세계로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0. 15. 00:35
▲ 장아찌 세계에 빠져봅시다. 한여름에 물 말아서 장아찌 하나면 쫄깃한 맛에 한 그릇 금방이지요. 일반 농산물로 이렇게 많이 차릴 수 있습니다.
ⓒ2005 김규환
장아찌가 시작된 유래는 김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각종 젓갈에 찹쌀죽 쒀 마늘 따위 양념을 찧어 고춧가루로 비비는 게 요즘 김치라면 조선 순조 때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는 물김치로 이해하면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그 이전에 고려시대로 가면 아무 양념이나 향을 더하지 않고 맨 소금물에 절여서 저장해둔 김치가 있다. 이 김치가 바로 요즘 단무지에 가까웠다. 때로 사극(史劇)을 찬찬히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도 붉은 김치가 나오는데 이는 명백히 소품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연출자의 잘못이다.

▲ 장아찌의 대명사 들깻잎. 된장박이 그대로가 소금물에 절여 다시 양념해서 나온 것보다 훨씬 진한 맛이 납니다. 콩잎도 훌륭한 장아찌가 됩니다.
ⓒ2005 김규환
장아찌란 무엇인가? 제철에 나는 푸성귀, 채소, 열매 따위 수확물을 한 때만 먹어서는 한겨울이나 이듬해 여름에 먹을 게 없던 오래 전에는 장기간 보존을 위해 주로 된장이나 고추장, 간장, 소금물에 잊은 듯 넣어둔다.

입맛이 없을 때나 반찬을 마련하기 힘들 때 장독대에서 꺼내 다소 짭짤한 맛에 몇 점 주워 먹으면 밥 한 그릇 뚝딱 비워내는 우리네 밥상에서 빠트릴 수 없는 귀한 존재다. 젓갈도 이와 유사하나 주로 생선이었던 반면 장아찌는 농산물, 산나물이었다는 점에서 김치 원조로서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

▲ 분주한 <순창민속마을> 감장아찌인데 소금에 절여 떫은 맛을 없애고 얇게 잘라서 다시 양념을 하거나 고추장에 박아두면 맛있는 감장아찌가 됩니다. 여러 열매나 뿌리가 활용될 소지가 많습니다.
ⓒ2005 김규환
우리가 즐겨먹던 장아찌는 오이와 무 뿌리, 더덕, 매실, 감, 풋고추, 마늘이 대표 구실을 했다. 들깻잎, 콩잎도 예외가 아니었다. 집 주위에서 흔하면서 다소 딱딱한 재료로, 가능하면 오랫동안 변형이 되지 않고 수분만 조금 빠질 뿐 비타민을 다량 함유하고 있으면서 장에 넣어두기만 하면 자연 발효되어 입맛을 되찾는 데 둘도 없는 친구였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엔 저장하는 최선의 방법은, 따뜻한 남부지방이나 겨울이 1년 중 절반 이상인 북부 산악지대이나 짜면 짤수록 좋았다. 군내가 나지 않으면서 원형 그대로 맛을 유지하는 게 쉽겠는가마는 대체 수단이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 식'이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소금을 듬뿍 뿌려 땅에 묻어야만 했던 것이다.

▲ <2003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곰취나물장아찌입니다. 곰취로도 장아찌를 만든다는 것인데 10월 중순에도 곰취가 이렇게 부드럽기도 하거니와 봄 향기가 아직 가시지 않아 무척 입이 즐거워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기회를 얻었습니다.
ⓒ2005 김규환
이제 '김치냉장고'가 각 가정마다 보급 완료를 마치려고 하는 시대다. 도시생활을 하다보면 문을 여닫는 기존 냉장고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바, 3일 이상이 지나면 맛이 상하여 식중독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말려두기도 하고, 얼려도 놓지만 아쉽기는 매한가지다. 눈밭 냉이와 봄동, 시금치를 먹기 시작한 게 엊그제인데 6월을 며칠 앞둔 이 시점에서 엄나무싹, 오가피싹, 옻순, 땅두릅, 두릅 철이 지나고 이제 막 죽순, 곰취, 참나물을 먹어보려는데 철이 지났다고 내 곁을 떠나가니 이 무성한 세상에서 이제 봄 향기를 맛볼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

▲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에 등장한 여러가지 버섯 장아찌. 표고버섯, 양송이, 팽이버섯, 느타리버섯이 씹혔답니다.
ⓒ2005 김규환
묵나물이야 정월대보름에 한 번 먹어보면 그만이지만 올 봄 내내 몸을 지탱해준 나물과 작별을 고하고 또 다시 1년을 기다리기란 지루하고 밥상도 형편없을지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 뒤 정신이 혼미해지듯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심정이 50여 가지 이상 새 인연을 맺은 산채(山菜)와 스쳐지나가듯 '한때 사랑했노라'고 하기엔 고통이다.

고통은 스트레스다. 현대의학에서 스트레스를 없애는 것이 장수비결이라 했는데 마침 장수촌인 순창, 담양, 곡성, 구례와 남성장수촌인 인제군을 다녀보니 스트레스가 없는 오지인데다 웬만하면 장아찌로 먹는 습성이 있더라.

▲ 곰취와 참나물을 약한 소금물에 며칠 절여뒀다가 냉장고로 들어갔습니다. 며칠 있으면 고기에 싸먹어도 되겠지요.
ⓒ2005 김규환
초봄엔 캐고 뜯어다 먹기 바빴다.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얼마 가지 않으면 또 헤어지는구나!'하며 입맛만 다시고 있겠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나도 용기를 냈다. 재작년부터 시작된 버릇이다. 조금 쇤 듯한 잎과 뿌리, 열매를 된장, 고추장에 박아 넣었다. 기름값이 아깝도록 산으로 쏘다닌 올 봄부터는 닥치는 대로 넣기로 작정을 했다.

내 첫 번째 간택을 받은 나물은 두릅이다. 엄지손가락만할 때 먹는 게 부드러워 애호가들 사이에 인기가 최고지만 향에서는 다소 핀 듯하고 가시가 곳곳에 붙어 따기조차 불편한 20cm에 육박하는 것이다.

그냥 생으로 넣기도 하고 데친 뒤 살짝 말려서 넣어뒀다. 시원하고 깔끔하면서 두릅보다 조금 더 쓴 맛이 나는 개두릅-엄나무싹도 넣었다. 오갈피와 가죽나물도 빠트리지 않았다. 옻순마저 넣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더덕도 절간에서 하던 대로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 장독에 빠트렸다. 당귀 잎도 들어갔다. 그 다음에 올 최고로 보배로운 두 친구가 있다. 다름 아닌 곰취와 참나물이다. 두 녀석을 만나러 두 번 다녀온 사이 집안 냉장고가 가득 차서 이 사람 저 사람 나눠주는 것도 일이었고 된장도 바닥을 드러냈다. 부랴부랴 장모님께 된장 한 통, 누나네에서 된장 한 통을 공수 받아 작업에 들어갔다.

▲ 장아찌의 기본은 된장입니다. 2~3년 묵은 된장에 그냥 넣어두기만 하면 훌륭한 반찬이 됩니다. 다소 억센 산나물을 모두 집어 넣었습니다.
ⓒ2005 김규환
산채-산나물은 아직 몇 가지 한계를 갖고 있다.

첫째, 수확이 많지 않아 시장 형성이 쉽지 않다는 점이고 둘째는 채취 시기가 단 며칠로 짧은 게 흠이고 셋째는 보관이 용이치 않음이요, 넷째는 쌈으로 싸거나 삶아서 나물로 먹거나 어린 순을 생으로 무쳐 먹는 것 외엔 조리법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곰취와 참나물을 아직 나눠 먹고 시험 재배하는 기간이므로 며칠간 방치하다 보면 애써 뜯어온 나물이 썩어가는 참담한 상황을 몇 번 경험한 적이 있다. 큰 김치 통으로 된장 2통, 고추장 1통과 소금물에 쓰린 마음을 달래며 넣어야 했다. 두고두고 먹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김치를 담가 먹는 것보다 수월하니 마음이 바빠지는 요즘 가장 간단한 방법 아니겠는가.

▲ 고추장도 뺄 수 없는 장아찌 재료지요. 실험삼아 더덕 싹도 한번 넣어보았답니다. 어떻게 될까요?
ⓒ2005 김규환
얼마 전엔 비만인 줄 이제야 깨달은 아내를 위해 어린 뽕잎을 볶아서 말렸다. 변비에도 좋고 비만치료, 소화에도 그만인 차(茶)이다. 게다가 뽕잎 수제비도 만들어 먹었다. 어느덧 들녘엔 오디가 붉게 익어가고 있다. 누에가 실을 솔솔 뽑아내던 섬유질 덩어리인 뽕잎도 활짝 피어 흰 뜨물 좔좔 흘리며 장아찌로 만들라고 손짓을 한다.

장아찌의 장점이 무언가. 바로 농사 소득을 높이는 한 방안이라는 점이다. 오래 변치 않아 유통에도 용이하니 뭘 더 바랄까. 거칠게 씹히는 자연의 선물이야말로 건강식이요, 참살이에 가장 가까운 음식이다. 진정한 웰빙은 주거환경과 음식, 의복에 노동 강도, 정신적 여유가 충만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쉽지 않은 삶이다.

▲ 된장, 고추장도 이런 집에서 묵히면 다른 맛이 나듯 영양과 발효에도 최적의 조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보다 '장독대에서 인심난다'가 맞는 듯합니다. <산채원>에 장독대도 어엿한 주인으로 융숭한 대접을 할 생각입니다.
ⓒ2005 김규환
내겐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 김칫독을 많이 묻는 일 말고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콩을 많이 심어 정겹게 된장독 여러 개 놓고 묵은 된장에 확보한 나물을 종류별로 장아찌를 박아놓겠다. 한 줌씩 꺼내 서울로 보내면 얼마나 시골 맛이 나겠는가. '장아찌모음' 하나에 시원한 물 말아 먹으면 한 여름 나는데도 별 탈이 없을 것이다.

내 손에선 된장 냄새와 나물 향기가 버무려져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지만 꺼내 먹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과연 장아찌는 몇 가지나 될까? 내 실험은 이제 시작이다.

▲ 이런 장아찌를 보면 침이 꼴깍꼴깍 넘어갑니다. 밥 한 그릇 주세요. 장아찌 축제를 벌여도 좋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