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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에도 코드가 있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0. 13. 17:29
대화에도 ‘코드’가 있다



난이도 고등

대화에도 코드가 있다


식당에 가서 “저 밥 먹으러 왔습니다.”라고 외치는 사람은 없다. 식당 문을 여는 순간, 서로 이미 왜 여기 왔는지를 아는 까닭이다.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손님에게 자리를 권하고 물 잔을 내려놓는다. 그 다음에는 영어 회화 책에 나올 법한 익숙한 대화가 이어진다. “무엇을 드시겠어요?” 등등.

그런데 만약 음식을 시켜야 할 순간에, 식당 아주머니에게 “그런데 아줌마, 인생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고 해보자. 분위기는 금세 막막해질 터다.


우리의 일상은 ‘롤플레잉 게임’(roleplaying game)과 다르지 않다. 때와 장소마다 자신과 상대가 해야 할 역할과 말이 있다는 뜻이다. 옷가게에서 손님이 건넬 법한 말과 점원이 응수할 표현이 무엇인지는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다. 고상한 학술대회에서는? 역시 사람들이 어떤 대화를 나눌지 그림이 그려진다. 상황에 맞게 옷을 고르는 ‘드레스 코드’가 있듯,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걸 맞는 ‘대화 코드’가 있다.


심리학자 윌리엄 글라써는 대화 코드를 ‘사실-감정-의견’의 세 단계로 정리한다. 예를 들어보자. 날씨는 사람들이 즐겨 나누는 이야깃거리다. 그런데 왜 “오늘 날씨 참 좋죠?”라고 묻는 걸까? 진짜 날씨가 좋은지 몰라서일까? 아니면 날씨가 좋다는 자신의 생각에 동의를 얻고 싶어서인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그냥 말문을 트는 물음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연예인이나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는 편안한 대화거리들이다. 뉴스에 나온 야구 스타의 활약을 늘어놓기 위해 나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상대를 들춰낼 일도 없다. 이런 소재들은 나와 상대방, 누구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마음의 부담도 없다. ‘가벼운’ 대화란 이처럼 사실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친다.


첫 만남은 마음 불편하기 쉽다. 그럴 때는 나와 상대방, 누구의 대한 것도 아닌 ‘사실’을 화제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보자. 날씨에서 학교생활, 입시 정보에 이르기까지, 찾아보면 소재는 아주 많다. 그 가운데서 둘 다 관심 있는 주제를 찾아서 ‘무한 수다’를 떨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사이는 아주 빨리 가까워질 터다.


‘사실’ 다음은 ‘의견’ 단계의 대화다. 사람들의 생각이 항상 같을 수는 없다. 살다보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릴 때도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살기란 어렵다. 더구나 이런 말을 할 때는 감정이 실리기 마련이다. 얼굴 붉히며 소리 높여 논쟁을 벌인 사람과 속 편한 관계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의견을 말할 때는 최대한 논리에만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분노가 불끈거린다면, 아니면 슬픔이 북받쳐 올라온다면 일단 숨을 가다듬는 게 좋겠다. 카타르시스란 배설이라는 뜻이다. 이 표현을 우리는 감정이 폭발했을 때 쓴다. 화장실에서 일 보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무척 부끄러울 것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폭발한 감정은 배설과 같아서, 그 뒤 끝을 수습해야 할 때 적잖은 수치심이 찾아들곤 한다. 비즈니스맨들에게 감정의 절제를 강조하는 까닭은 여기 있다.


마지막은 ‘감정’ 단계이다. 감정을 나누는 사이에서는 못할 말이 없다. 예의 바르기로 유명한 친구도 자기 엄마에게는 쉽게 짜증을 부리곤 한다. 자기가 신경질을 부리건, 퉁퉁거리건 엄마와의 관계가 어그러지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아는 탓이다. ‘마음을 나누는 사이’란 바로 이렇다.

인간관계는 사실에서 의견을 거쳐 감정에 이르는 단계로 나아간다. 처음 만나는 이에게 “저는 아주 괴로운 처지에 놓여 있어요.”라는 말은 부담스럽다. 둘 사이가 감정이 통할 만큼 가깝지 않을뿐더러, 상대 역시 나의 심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화를 함에 있어서는 대화의 코드가 어디에 있는지에 주의해야 한다.


반면, 사실과 의견 단계를 넘어 감정 단계로 곧바로 넘어가는 대화도 있다. 같은 고향이나 학교 출신임을 알아채는 때가 그렇다. 반가운 마음에 이어 친밀함이 북받치고 나면, 그 다음은 ‘만사 OK’다. 꼬여버린 의견 차이도 ‘고향선배’라는 이유로 술술 풀리고, 분명한 공통점이 있기에 대화도 부드럽다. 인맥과 학연에 대한 집착이 왜 사라지지 않는지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증오는 사랑을 타고 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애증(愛憎)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애증이란 사랑하기에 미워한다는 뜻이다. 친한 친구의 한마디는 데면데면한 사람의 욕설보다 더 가슴에 사무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점을 쉽게 잊어버린다. ‘친하니까’ 이해하고 용서해주리라 생각한다. 관계가 ‘삐딱선’을 타기 시작하는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또한, 감정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나에게는 절실하다 해도, 다른 이들 눈에는 특혜와 편애로 비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와 너무 가까워 서로 상처를 주고 있는가? 그렇다면 냉정한 의견과 가벼운 사실의 단계로 ‘대화 코드’를 낮추어 보라. 오래된 사이임에도 관계가 푸석푸석하다면 어떻게 감정의 단계로 코드를 높일지를 고민해 보자. 최고의 멋쟁이들은 상황에 맞는 드레스 코드를 안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때와 장소에 맞는 대화 코드는 그대를 ‘대화의 달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 뇌를 깨우는 논리 체조

다음 상황에 적절한 대화 코드는 사실, 의견, 감정 중 어느 것인지 설명해 보세요. 각 상황에서 적절한 대화 내용은 무엇인지도 토론해 보세요.


1.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을 때

2. 수행평가 점수가 잘못 나와서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3. 좋아하는 친구에게 다른 친구 흉을 볼 때

4. 연예인을 우연히 만나서 사인을 해달라고 할 때

5.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처음 반 아이들을 만났을 때



▣ 체조 방법

코드에 맞지 않는 대화는 서로에게 불편할 수 있습니다. 의견단계의 일을 감정 단계에서 처리하는 대화는, 둘 사이를 청탁과 비리로 얼룩진 ‘부적절한’ 사이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관계의 거리를 정확하게 잴 수 있는 감각을 갖추도록, 여러 상황에서 상대가 느낄 법한 감정이 무엇인지를 가늠해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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