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도 맞바꿀 만한 맛!…‘황복’을 아십니까?
◇ 황복 냄비요리 ◇
일 년 열두 달 중 딱 두 달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농어업 기술이 발달하면서 웬만한 음식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제철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게 있다. 값이 비싼 데다 독이 있어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먼 곳까지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 진미, 바로 황복이 그 주인공이다. 복은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한 데다 맛이 담백하고 영양가가 높아 한국과 일본에서 미식가들이 첫손가락에 꼽는 고급 어종이다. 참복, 자주복, 까치복, 은복 등 종류가 다양하지만, 한국에서 식도락가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황복이다. 옆구리에 노란 줄이 있어 황복이라 불리는 이 복은 현지 직판장에서도 ㎏당 10만원이 넘는다. 1㎏이 넘는 큼직한 놈을 사도 회로 칠 수 있는 살점은 얼마 되지 않고, 5∼6월 산란기에만 제 맛을 볼 수 있다. 올가을 개봉 예정인 영화 ‘식객’에서 ‘죽음과도 맞바꿀 만한 맛’이라고 소개되는 황복은 어떤 맛이기에 이 같은 칭송을 받는 것일까.
# 유일한 민물복, 황복 다른 복은 모두 바다에서 잡히지만, 황복은 민물에서 잡힌다. 황복은 서해안 연안에서 살다가 4월 말이 되면 산란하기 위해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온다. 수십 년 전만 해도 금강과 섬진강 등에도 올라왔지만, 댐 건설 이후에는 볼 수 없게 됐다. 연어와 같은 회귀성 어종이라 산란 후 바다로 돌아가는데, 바다에서 잡힌 것은 산란기에 잡힌 것의 맛에 못 미친다. 산란을 위해 몸에 여러 영양소를 잔뜩 모아놓은지라 그 맛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간 해독에 좋은 글루타치온 성분이 많아 간질환과 숙취 해소, 성인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임진강에서 잡히는 황복을 취합, 판매하는 파주어촌계의 박장진씨는 “황복은 민물에 오래 머물수록 살이 단단하고 쫄깃해진다"며 “생선회의 쫄깃한 맛을 즐기는 한국인들에게는 최고의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 죽음과 맞바꿀 만한 맛 황복을 이야기할 때는 중국의 소동파가 빠지지 않는다. 그의 시 중 ‘도화의 봉우리가 터지고 갈대가 싹틀 때 하돈이 하류에서 올라온다’는 시가 있는데, 여기서 하돈(河豚)은 황복을 뜻한다. 소동파는 황복을 매우 좋아해 죽음과 맞바꿀 만한 맛이라고 칭찬했으며, 양주 관리로 있을 때 복을 먹느라 정사를 게을리 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다. 황복의 육질은 다른 복에 비해 약간 단단한 편이다. 그러나 요리법은 다른 복과 별로 다르지 않다. 수십년 전 임진강에 황복이 흔했던 시절에는 어부들이 말려서 쪄 먹었다고 하나, 현재는 워낙 귀하고 비싸서 일단 회로 즐긴 다음, 남은 살과 뼈를 탕으로 끓여 먹는 게 보통이다. 회나 튀김을 즐기는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탕이 가장 인기 있는 요리법인데, 살아 있는 신선한 황복은 양념 맛이 강한 매운탕보다는 보통 ‘지리’라는 맑은탕이 제격이다. 쫄깃하게 씹히므로 튀김과 수육, 찜으로도 즐긴다. 황복을 먹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독. 청산가리보다 1000배 이상 강한 독으로 1마리에 어른 33명이 죽을 수 있다고 한다. 임진강 인근에서 32년째 횟집 ‘어부의 집’을 운영하는 이미자씨는 “황복은 다른 복에 비해 독성이 강해 조리하는 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내장과 알은 물론 눈알과 피까지 꼼꼼하게 제거해야 하며, 초보자는 아예 요리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 황복을 맛보려면 임진강 황복은 하루에 수십 마리밖에 안 잡힐 정도로 수량이 적어 파주시 밖으로 나가는 물량은 거의 없다시피 해 임진강 일대에서만 맛볼 수 있다. 많이 잡히지 않는 해에는 1㎏에 20만원이 넘기도 하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어획량이 많은 편이어서 가격이 그 정도로 비싸지는 않다. 파주어촌계 직판장(031-958-8006∼7)에서는 1㎏을 10만원에 구입할 수 있으며, 집에서 요리할 수 있도록 독이 있는 알과 내장 등을 제거해 준다. 작은 것은 500g, 큰 것은 1.5㎏까지 나가는데 클수록 맛이 좋다. 배가 훌쭉한 것은 알을 이미 낳은 것이지만, 고기 맛은 알을 낳기 전과 큰 차이는 없다. 복은 잡은 후 바로 회를 치는 일반 활어회와 달리, 잡은 뒤 5시간 이상 숙성시켜야 제 맛이 난다. 임진강 일대 회집 50여곳에서는 1㎏당 16만∼18만원에 황복 회, 탕, 껍질초회, 튀김 등으로 코스 요리를 내놓는다. 2∼3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어부의 집(031-952-4059)에서는 회와 튀김 등을 내놓은 뒤 회를 뜨고 난 황복 한 마리를 통째로 넣은 황복 맑은탕을 상에 올린다. 여울목(031-958-5307)은 황복회를 찍어 먹는 이 집만의 특제 소스가 별미다. 양념과 각종 채소를 넣고 끓여낸 찜도 인기 메뉴다. 민물고기 마을(031-958-5377)도 단골들이 즐겨 찾는 황복 전문점이다. 황복철을 맞아 특별 행사를 마련한 호텔도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의 일식당 스시조(02-317-0373)는 이달 말까지 황복 요리를 선보인다. 황복 수육과 구이·매운탕·튀김 등을 일품요리로 선보이며, 튀김·껍질초회·맑은탕 등으로 구성된 세트 메뉴도 제공한다. 유명 복집에서 요즘 한시적으로 내놓는 황복은 대부분 한강 하류에서 잡은 것이다. 그나마 공급이 안정적이지 않아 서울시내에서 구경하기는 쉽지 않고, 단골들이나 운이 좋으면 맛볼 수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에는 한 어민이 황복 양식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미식가들의 눈길을 끌었는데, 경남 통영 한산도 양식장에서 유일하게 황복이 양식되고 있다. 일년 내내 황복을 맛볼 수 있으므로 통영을 찾아가볼 만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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