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하고 시원한 동태 국물, 얼었던 몸이 사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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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콜록…’ 이 맘 때면 주변에서 연신 이런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날이 풀어지면서 꽁꽁 닫아 여미던 옷깃도 풀어지니, 자칫 환절기 감기에 걸리기 쉽다.
내 남편 역시 때 늦은 감기에 걸려 고생하길 몇 날 며칠, 아직도 기침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니 환절기 감기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벌써 3월의 첫 주가 시작되어 봄기운을 맞이하기에도 벅찬 데, 감기와 싸우고 있는 남편을 보자니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각종 야채와 과일을 먹여야 한다는 객관적인 상식이 내 머리속에 가득하지만, 얼큰한 국물에 뜨끈한 밥 한술을 떠 먹이는 게 좋겠다 싶은 마음이 와 닿는 것은 왜 일까. 환절기 우리 몸 속에 남아있는 차가운 기운을 뜨끈뜨끈한 요리와 함께 후루룩 넘겨 버리려 함일까?
이런 연유에서 오늘만큼은 얼큰하고 칼칼한 동태 내장 전골에 뜨끈한 오곡 가마솥 밥을 꼭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전골에는 하얀 쌀에 은행, 밤, 대추 등을 촘촘히 박아 지은 영양밥이 제 격 이겠으나, 주말이면 다가오는 정월대보름을 맞아 가마솥에 지어내는 오곡밥으로 대신하여 한상 차려 내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산물 가운데 가장 즐겨먹는다는 ‘명태’. 어떤 형태로 저장, 보관하느냐에 따라 그 이름이 대여섯 가지나 되는 생선이다.
바닷바람 맞으며 해변에 널어 말리면 북어, 잡히자마자 산 중턱으로 올라가 대롱대롱 매달려 산바람과 햇볕에 말려지면 황태, 바늘코에 예닐곱 마리씩 끼워 반건조시키면 코다리. 거기에 더해 일련의 말리는 과정 없이 영하 40℃ 이하 급속 냉동시키면 바로 동태이다. 예전엔 저렴한 가격과 담백한 맛으로 서민들의 식탁에 자주 오르내렸던 동태이건만 요즘 들어서는 참 만나기 어려운 재료가 되어 버렸다.
가끔 제사상에 전 부칠 때 외에는 선뜻 손이 가질 않는 재료이니, 새내기 주부들에게 조금은 어렵고 낯선 재료일 수도 있겠다. 나만해도 몇 달 전 촬영차 의정부 너머 송추 근처에서 맛본 동태 전골이 아니었다면 동태로 무엇을 만들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터이니….
의정부를 지나 울대고개 너머 송추 검문소를 지나면 한 동태요리 전문점이 나온다. 이 곳의 동태 내장 전골은 꽁꽁 얼어붙은 동태살이 야들야들해지면서 생태같이 느껴지고, 거기에 풍성하게 올려진 알과 ‘애’, ‘이리’, ‘곤이’ 등 각종 내장들의 부드럽고 폭폭한 느낌에 알싸한 맛까지 일품이다.
간혹 내장 전골을 끓이다 보면 알과 내장들이 다 터지면서 일순간 국물이 텁텁하게 변하는데, 어쩜 이리 하나도 안 터지고 국물이 개운한 것일까. 처음에는 속을 확~ 풀어주는 듯 하더니만 끓이면 끓일수록 더한 감칠 맛 때문에 연신 숟가락을 담그기에 바빴던 기억이 떠오른다.
겨울이 다 가기 전 꼭 해먹어 보리라 결심했으나, 남편의 감기 덕(?)에 뒤늦게나마 끓이게 되었으니, 나름 솜씨를 내어 열심히 만들어 보았으나 실패! 국물 맛은 좋은데 동태살은 다 터지고 내장에도 국물이 녹아 드니 어찌하란 말인가. 한참을 난감해 하고 있다가 그 비법도 알아낼 겸 내친김에 남편과 함께 다시 송추로 찾아갔다.
한 냄비를 다 비우고서는 사장님께 나의 동태 전골 수난기에 대해 한탄을 하니 의외로 간단한 방법을 알려주신다. 맛이야 집마다 장맛이 틀리 듯 손 맛 또한 틀린 것이니 식성에 맞게 양념하면 되지만, 이 동태살과 내장들을 터지지 않게 처리하는 것이야 말로 중요하다고 한다.
동태는 아주 살짝만 녹이고 내장은 얼은 채로 넣어야 터지지 않는단다. 아하. 이리도 간단한 방법을 모르다니. 나 역시 겉멋만 화려했던 것일까…. 사실 나중에서야 남편이 자기에게 물어보지 않았다며 나에게 때 아닌 구박까지 해댔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는 동태 내장 전골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동태 전골에 각종 은행과 잣 등 견과류를 넣어 조그마한 가마솥에 영양밥을 함께 해 먹이고 나니 한결 남편의 감기 기운이 나아진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영양밥이 아닌 정월 대보름 맞이 오곡밥을 지어 보자. 오곡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팥을 삶아서 넣고 콩을 충분히 불리는 것. 이렇게 찹쌀에 멥쌀, 팥, 콩, 수수, 차조 등을 섞고 평소 하듯이 밥물을 재서 밥을 하면 질척거려 먹기 어려운 밥이 되기 십상이다.
평소 밥물의 8부 정도를 넣는다는 생각으로 밥물이 손가락과 손등 사이가 되는 정도까지만 부어 밥을 하면 촉촉하면서 찰진 오곡밥이 만들어 진다. 여기에 가마솥 별미인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 밥을 섞어 덜어내고 밑 부분만 살짝 남긴 후 주걱으로 바닥에 눌러가며 펼쳐 약한 불에 5분 정도 올려 놓으면 바삭바삭한 누룽지까지 얻게 된다.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함께 갖가지 나물을 먹고 나서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부스럭거리며 부럼을 깨어먹는 재미도 있다. 여기에 가마솥에 누른 누룽지를 곁들여 내면 견과류 平?않은 부럼의 한 종류가 될 터이다. 이번 보름상에는 찰진 오곡 가마솥 밥과 함께 시원한 동태 전골을 뚝딱 해치우고서는 누룽지 부럼도 먹고 보름달도 보며 가족의 건강을 기원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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